좋은 책 번역해주어 고맙습니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을 번역한 김현욱 인터뷰

 

참 잘 자란 청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말 한마디 글 한 줄 허투루 쓰지 않고, 했던 말과 쓴 글도 되돌아볼 줄 아는 진중한 모습에 나이답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빈틈 없나 푹푹 찔러보고 싶어 시작한 인터뷰였으나 슬쩍 슬쩍 보이는 나이다운 모습이 더 매력적이었달까요.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번역가이자 25살 청년 김현욱에 관한 '미미하게' 사적인 인터뷰 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대학원에서 학기 말 페이퍼를 쓰고 있어요. 올해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서 석사 1학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일본에서 나왔어요. 일본은 어떻게 가게 된 건가요
학자이신 아버지가 연구년에 일본엘 가셨는데 제가 따라갔었죠. 그러다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 계속 살게 됐습니다.  


일본에 어떤 매력을 느꼈던 거예요?

일본에 매력을 느꼈다기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다니면 힘들다잖아요. 제가 수능 공부를 잘 해서 대학을 잘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됐고. 제가 다닌 곳이 도시샤 국제고등학교라고 해서 대학 내부에 있는 고등학교예요. 그래서 자동적으로 도시샤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어요. 운이 좋았습니다.


한국인이 일본이란 나라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이력은 좀 특이합니다

아무래도 일본어를 할 줄 아니까 영어를 열심히 해서 나중에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들어갔습니다. 


아 어학에 대한 욕심이 많으셨던 거군요

네. 


일본에서의 고등학교 생활, 돌아보니 이런 게 좋았다 하는 게 있는지

고등학생 때는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을 수 있던 시간이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어떤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때는 역사에 관심이 있었어요.  


어떤 역사?

여러 나라 역사.. 세계사요. 특히 서양사, 합스부르크 왕가 얘기에 관심이 있었고. 그리고 악마에 관심이 많았어요. 마녀 사냥이나 중세 판타지 소설 좋아했거든요.


악마 캐릭터물을 좋아했던 거예요?

그건 아니고 악마에 얽힌 이야기요. 


왜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다닌 도시샤 국제고등학교가 기독교 학교거든요. 매일 아침마다 채플 수업을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기독교를 안 믿어서..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뭐라고 해야 하지 거부감은 아닌데요. 성경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어요. 고등학교 때 이상한 데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음. 오타쿠?

오타쿠는 아니고요.. 


호기심?

네 호기심. 컬트에도 관심이 있었고요. 좀 다크한 부분에 초첨을 두고 책을 읽다보니까 악마나 마녀사냥에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존 밀턴의 서사시 『실낙원』을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거기 보면 사탄이나 다른 악마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특히 사탄이 주인공이라 해도 좋을 정돈데, 제가 인간 내면의 어두운 부분에 끌리는 경향이 있었나봐요. 지금은 안 그런데 말이죠. 


그러고보면
<인터넷과 애국: 재특회의 어둠을 좇아서>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원제)에도 '어둠'이라는 말이 나오는군요. '재특회'는 언제 어떻게 접했나요?

재특회가 2007년에 생겼으니까 제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예요. 고등학생 때도 관련 문제에 관심은 갖고 있었어요. 인터넷을 하다 보면 한국이나 재일코리안에 대한 비판을 보게 되고 그 문제로 기숙사 친구들이랑 논쟁도 많이 했어요. 2005년, 2006년 무렵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독도 문제로 한일 간에 문제가 됐을 땐 더했고요. 그때 공부를 열심히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원서 <인터넷과 애국 : 재특회의 어둠을 좇아서>는 어떻게 접했나요
트위터로 봤어요. ‘굉장히 재밌다. 좋은 책이다’라는 글이 많이 있길래 그럼 '나도 읽어볼까' 하고 읽어보았습니다.  


읽은 후 첫 느낌은?
뭐라 그럴까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고요. 저도 일본에 살았으니까 재일코리안의 차별 얘기는 많이 들었거든요. 가슴에 와 닿는 게 있었죠. 그리고 책에 나오는 재특회와 재일코리안들의 ‘사람 이야기’에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번역까지 하고 싶다는 욕심은 또 다르게 강력한 동기유발이 있어야 했을 텐데요
개인적으로 많이 욕심나는 작품이었어요. 요즘 일본 책들이 많이 번역되고 있잖아요. 어지간한 책은 거의 번역되는 것 같아서 아마 제가 아니었어도 어쩌면 다른 사람이 이 책을 번역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면에서 제가 운이 많이 좋았죠.


오히려 국내에 번역되는 일본 책은 편향돼 있지 않나요. 이런 일본의 르포 책은 오히려 귀해요

아무래도 일본 소설이 많이 번역되죠. 듣고 보니까 그러네요.


이 책으로 번역가 데뷔를 한 건데 나이도 젊고 번역도 좋아 다들 감탄했습니다. 번역을 잘 하기 위해서 노력한 게 있나요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게 비교적 쉽더라고요. 어순도 똑같도 문장구조도 똑같고, 기본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이 쓰는 한자어가 비슷하잖아요. 별로 어려운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럼 어려운 점은 뭐였어요?

.. 없었어요.  


전혀요?

... 네.


대학원 동기들이 현욱씨가 번역한 거 알아요? 뭐래요?

대단하다고..(웃음) 
 


야스다 상이 한국에 와서 지내는 일주일 동안 어땠나요. 가까이 지내면서 느낀 야스다상은?

일본에서 한번 만나긴 했는데 이렇게 긴 시간동안 함께 다니다보니까 여러 가지로 많이 배웠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어봤을 때도 그랬지만 존경스러운 저널리스트인 것 같아요. 뭐랄까. 열정적이고 아는 것도 많고. 제가 이번에 MBC 라디오에 게스트로 나갔는데요. 취재를 받는다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야스다상은 언론 인터뷰뿐 아니라 강연 때도 청중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정말 잘 정리를 해서 말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디오에 출연하면서 더욱 느꼈어요.  


라디오 출연은 어땠나요?

생방송이다보니까 편집도 안 되고 제가 하는 얘기 그대로 나오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엄청 긴장이 되더라고요. 너무 긴장하다보니까 말을 너무 빨리했어요.

 

 

그러고보면 야스다상 통역도 직접 다 하셨어요
통역은 처음이었어요.
 


매순간 굉장히 집중해야 하는 작업이었을텐데 힘들지 않았어요?

생각보다는 잘한 것 같아요. 처음엔 제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했었는데, 야스다 씨도 미리 강연 원고 보내주셨고 어느 정도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이니까 괜찮았어요. 그런 점에서 나름대로 성과는 있었던 것 같아요. 아쉬운 건 예를 들어 농담을 통역했을 때, 일본어로 제가 들었을 때는 굉장히 재밌는 얘긴데 청중분들이 안 웃어주실 때 내가 통역을 잘못했구나 싶었어요.   


요즘 새 책을 번역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책인가요

다케다 도루라는 저널리스트가 쓴 책인데, 원전을 통해 일본 사회를 들여다 본 책이에요. 문화사적 혹은 사회사적인 관점에서 원전을 분석했어요. 일본에 어떻게 처음 원전이 들어왔고 어떤 방식으로 일본 문화나 사회 속에서 수용돼 왔는가. 고질라나 아톰 같은 애니메이션 얘기도 많이 나와요. 책에서는 고질라가 원래는 원폭을 맞고 괴물이 된 거라고 합니다. 일본이란 나라가 원폭을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서 군사 대국의 길은 포기하게 되고, 경제 대국의 길로 나가면서 그 상징으로 원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얘기죠. 말하자면 1945년 이전의 군국주의 일본과 1945년 이후의 경제대국 일본은 원자력(원폭, 원전)으로 이어져 있다고 봤다는 게 이 책의 특징인 것 같아요.
 


조금 다른 얘긴데, 학사로 영문학을 하다 석사를 정치외교학으로 바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원래부터 한일 간의 역사문제를 지켜보면서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요. 학부 시절부터 정치학 책을 많이 읽었어요. 특히 이번에 책을 번역하면서 사회과학쪽에 관심이 많이 생겨 정치외교학과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문학에서 사회과학으로 바꾼 거네요
그렇죠. 


좋아하는 영문학 책 있어요?
제인 오스틴의 책들이요. 


왜 좋아요?

굉장히 작은 영국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그 속에서 굉장히 많은 얘기들을 담아내는 능력이 있는 작가 같아요. 뭐라 그럴까. 그런 세계관이 좋아요. 문장도 위트가 있고.  


정치학도로서, 앞으로 욕심이 있다면

이 책 번역하면서 일본의 보수 사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일본 우익에 대해서 우리가 비판을 하는데 과연 일본 우익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구체적으로 우익 사상에 관심이 생겼고요, 그래서 보수주의 사상에 대해서 앞으로 더 공부를 해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랑 다른 생각에 끌리고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비판할 때 비판하더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나서 비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죠. 『거리로 나온 넷우익』저자인 야스다씨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재특회를 취재한 게 아닐까요. 


그러고보니 거리로 나온 넷우익 독자에게 첫 팬레터를 받으셨는데
너무 감사하죠.  


좋은 책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저야말로 좋은 책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 직접 만나면 그 폭력적 언어에서 연상되었던 무시무시한 느낌을 받는 일은 없다. 아니, 어쩌면 파시즘이나 인종차별주의도 실제로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역사적으로도 독재에 대한 열광을 밑에서 지탱해 온 사람들은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좌익이 말하는 ‘인민’ 말이다.” (p.320)  

 재특회와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저자의 통찰이 돋보이는 구절입니다. 그리고 좌익이 말하는 인민이나 서민, 민중이야말로 어쩌면 풀뿌리 파시즘이나 인종차별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시사를 준다는 점 또한 충격적이었습니다. -  번역가가 뽑은 책의 가장 인상깊은 구절

 


김현욱 번역자가 꼽은 내 인생의 책

 

 

『오만과 편견』(임지현, 사카이 나오키/휴머니스트)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제목만 따왔지, 내용은 전혀 무관합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탈민족주의적 역사를 재구성하고 계신 임지현 선생님과 사카이 나오키 선생님이 한일 양국의 역사에 대해 대담한 책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일제시대나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서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역사관이 주류인데, 한일관계사를 보는 데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속죄』(이언 매큐언, 문학동네)

 “현대의 제인 오스틴”이라 불리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의 영국을 살아가는 세 젊은이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인데요. 그 속에 계급과 전쟁의 폭력성, 역사와 사회에 의해 희생된 두 젊은이의 러브스토리와 한 소녀의 성장스토리, 소설을 쓴다는 것의 의미 등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을 유려한 문장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가히 걸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키이라 나이틀리와 제임스 맥어보이 주연으로 <어톤먼트>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영화도 감동적입니다.

 

『통치론』(존 로크, 까치글방)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 교환유학을 갔을 때, 정치학입문 수업을 들었습니다. 마키아벨리, 로크, 루소, 밀, 마르크스/엥겔스 등 정치철학의 고전들을 읽는 수업이었는데, 영어로 책을 읽고 수업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아서 고생했지만, 정말 재미있는 수업이었기 때문에 대학원에서 정치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겠노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때 읽은 책들 중에서 마키아벨리나 루소의 난해한 문장들보다는 로크가 제일 간명해서 『통치론』을 선택했습니다. 

 

 

Posted by humanitasbook